솔직히 처음 봤을 때는 그냥 통쾌한 복수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남자가 살인마를 찾아가 응징하는 이야기.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제가 예상했던 감정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통쾌함이 아니라 묵직한 허무함이었습니다. 김지운 감독의 2010년작 〈악마를 보았다〉는 그런 영화입니다.미장센이 만들어낸 불편한 아름다움영화의 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눈이 쌓인 외딴 도로, 고요한 밤, 그리고 차 한 대. 제가 직접 봤을 때 느낀 건 "이게 왜 이렇게 아름답지?"라는 당혹감이었습니다. 분명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 직전인데, 화면은 너무나 고요하고 차가운 색감으로 가득했습니다.여기서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개념이 핵심입니다. 미장센이란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영화 용어..
2016년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영화 〈밀정〉은 실제 역사 사건인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작품입니다. 처음 봤을 때 저는 그냥 첩보 액션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머릿속에 남은 건 폭발 장면이 아니라 "이정출은 도대체 어느 편이었던 걸까?"라는 질문 하나였습니다.이정출이라는 인물,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렸습니다〈밀정〉에서 이정출은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입니다. 직책은 경부(警部). 여기서 경부란 지금으로 치면 경찰 간부급 직책으로, 당시 조선인이 오르기 매우 힘든 자리였습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그가 얼마나 복잡한 위치에 있는 인물인지가 느껴졌습니다.영화 초반에 이정출은 의열단을 잡기 위한 수사를 하면서도, 의열단 리더 김우진과 가까워집니다. 상하이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