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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저는 처음 〈곡성〉을 보고 나서 "내가 뭘 본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입 밖에 냈습니다. 무서운 장면은 분명히 있는데 공포 영화라고 하기엔 뭔가 다르고, 무당이 나오는데 무속 영화라고 정의하기도 애매했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결국 곡성 결말 해석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게 오히려 더 큰 혼란의 시작이었습니다.

외지인 정체와 곡성 결말, 팩트로 정리하면
〈곡성〉(2016)은 나홍진 감독이 연출한 한국 오컬트 스릴러입니다. 개봉 당시 전국 관객 688만 명을 동원했고(출처: 영화진흥위원회 KOBIS),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되며 국제적으로도 주목받았습니다.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지금까지 '곡성 결말 해석'이 검색어 상위에 오르는 걸 보면, 이 영화가 관객에게 남긴 질문이 얼마나 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영화의 핵심 갈등은 외지인(쿠니무라 준 분)이라는 일본인 남성을 둘러싼 의심에서 시작됩니다. 경찰 종구(곽도원 분)는 마을에서 연이어 발생하는 이상한 사건들의 원흉으로 외지인을 지목하고, 딸 효진(김환희 분)이 원인 모를 병에 걸리자 그 확신은 더욱 굳어집니다.
결말부에서 외지인 정체와 관련해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실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 외지인의 집에서 사건 피해자들의 사진이 발견된다
- 마지막 동굴 장면에서 외지인은 붉은 눈과 함께 악마적 형상으로 변한다
- 외지인은 이미 죽은 것처럼 보였음에도 다시 등장해 사람을 되살린 듯한 장면이 나온다
- 무당 일광(황정민 분)은 외지인을 '귀신'이라 불렀지만, 후반부에 일광과 외지인이 같은 편임을 시사하는 증거가 드러난다
제가 처음 이 장면들을 다시 확인했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일광의 차 안에서 발견되는 피해자 사진이었습니다. 외지인이 사진을 불태웠다는 이야기를 분명히 들었는데, 그 사진이 일광 차량에 있다는 건 영화를 보는 내내 선인과 악인이 뒤바뀌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이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 중 하나가 바로 '맥거핀(MacGuffin)'입니다. 여기서 맥거핀이란 관객의 주의를 특정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장치를 의미하는데, 쉽게 말해 관객이 중요하다고 착각하도록 만들지만 실제로는 핵심이 아닌 요소를 뜻합니다. 곡성에서 외지인의 집에 가득한 주술 도구들, 일광의 굿판, 그리고 무명(천우희 분)이 종구에게 던지는 단편적인 경고들이 모두 이 기능을 합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맥거핀을 남발하며 관객을 종구와 같은 상태, 즉 '알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몰아넣습니다.
흥미로운 건 영화 평론계에서도 이 작품에 대한 평가가 극단으로 갈렸다는 점입니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10점 만점을 부여하며 극찬했고, 영화 평론가 정성일은 그해 최악의 영화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평론가들의 의견 차이는 디테일이나 영화 문법에 대한 시각 차이에서 비롯되는데, 곡성의 경우에는 '알맹이가 있느냐 없느냐'라는 근본적인 판단에서부터 의견이 갈렸다는 점에서 상당히 이례적입니다.
무명의 경고와 '믿음'이라는 진짜 주제
제가 곡성을 두 번째로 봤을 때 처음과 가장 다르게 느껴진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종구가 길에서 무명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첫 관람 때는 무명이 믿을 수 있는 존재인지 아닌지에만 집중했는데, 두 번째 볼 때는 종구가 무명에게 하는 말이 귀에 걸렸습니다. "알아야 믿는 것 아니냐"는 그 한 마디가요.
무명은 그냥 믿으라고 합니다. 종구는 근거를 달라고 합니다. 이 짧은 대화 안에 사실 이 영화의 전체 주제가 담겨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종구의 행동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면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개념과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이 믿고 싶은 결론을 먼저 정해놓고 그것을 지지하는 증거만 선택적으로 수집하는 인지 왜곡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이미 마음을 정한 사람은 반대 증거를 봐도 생각을 바꾸지 않는 현상입니다. 종구가 외지인의 집에서 의심스러운 물건들을 발견했을 때 경찰로서 수사 절차를 밟는 대신 즉각적으로 '외지인이 범인이다'라는 결론으로 달려간 것이 바로 이 편향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닭이 세 번 우는 장면도 이 맥락에서 읽어야 합니다. 무명이 세 번 울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을 때, 그 장면은 단순한 미신적 장치가 아니었습니다. 일광에게 전화가 오고 종구는 결국 기다리지 못합니다. 이 장면은 성경에서 베드로가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예수를 세 번 부인했다는 이야기와 구조적으로 맞닿아 있습니다. '부인'이라는 행위, 즉 불안과 공포 앞에서 믿음을 포기하는 순간이 그 장면의 핵심입니다.
결국 곡성이 가장 강하게 던지는 질문은 "외지인은 악마인가"가 아닙니다. "당신은 공포 앞에서 무엇을 믿겠는가"입니다. 종구는 딸을 살리기 위해 확실하지 않은 믿음을 선택했고, 그 믿음이 비극을 완성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도 똑같이 종구처럼 '이게 맞다'는 확신과 '아닌 것 같다'는 의심 사이를 오갔을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정답을 찾으려는 충동이 생긴다면, 사실 그것 자체가 이미 이 영화에 낚인 상태라는 걸 이 영화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곡성 외지인은 결국 악마인가요, 신인가요?
A. 영화는 의도적으로 이 질문에 정답을 주지 않습니다. 결말 동굴 장면에서 악마적 형상이 드러나기 때문에 악마로 보는 해석이 가장 많지만, 손바닥의 구멍이나 부활처럼 보이는 장면을 근거로 메시아적 존재로 해석하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저는 어느 해석도 완전히 틀리지 않는다는 점 자체가 나홍진 감독의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Q. 무명은 선한 존재인가요?
A. 무명을 순수한 선신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냥 선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마을의 수호신 혹은 곡성이라는 공간 자체의 의인화로 해석할 경우, 원시 신앙에서 신은 선악이 아닌 자신만의 논리로 움직이는 존재에 가깝습니다. 무명이 종구를 도우려 했던 건 맞지만, 그것이 종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마을을 위한 것이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Q. 닭이 세 번 울었다면 결말이 달라졌을까요?
A. 나홍진 감독 본인은 인터뷰에서 큰 차이가 없었을 거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작품이 창작자의 손을 떠난 뒤에는 독자의 해석이 생겨납니다. 닭이 세 번 울었다면 무명이 상황을 다른 방식으로 수습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분들도 있고, 저도 그 가능성이 완전히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Q. 곡성에서 일광은 처음부터 외지인의 편이었나요?
A. 영화 전반의 흐름과 일광의 차량에서 발견되는 피해자 사진을 보면 처음부터 한패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일광이 단순히 외지인의 부하인지, 아니면 독자적인 목적을 가진 존재인지는 끝까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모호함 때문에 일광을 '살아 움직이는 미끼'로 보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결론
제 생각에 〈곡성〉은 알맹이가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 알맹이는 외지인 정체의 정답도, 무명이 선신이냐 악신이냐의 결론도 아닙니다. 알맹이는 바로 영화를 본 뒤에 우리가 취하는 태도 그 자체입니다. 정답을 찾으려는 충동, 내가 옳다고 믿는 해석에 집착하는 순간, 그게 종구와 다르지 않다는 걸 이 영화는 내내 보여줍니다.
한국 오컬트 영화 장르에서 이 정도로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작품은 손에 꼽힙니다. 아직 〈곡성〉을 보지 않은 분이라면 가능하면 해석 없이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보고 난 뒤에 정답이 찾고 싶어진다면, 그 감각 자체가 이 영화의 진짜 체험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