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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당 수치만 잘 관리하면 당뇨병은 괜찮다고 생각하셨나요? 저도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혈당을 성실하게 관리해 온 환자가 욕실 배수구 덮개에 살짝 긁힌 상처 하나로 결국 발가락을 잃는 상황을 접하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당뇨발은 관리를 게을리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병이 아닙니다. 당뇨 진단을 받은 순간부터 이미 조용히 시작되는 합병증입니다.

당뇨 합병증, 발에서 시작되는 이유
당뇨발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어도 왜 하필 발인지 설명해주는 곳은 드뭅니다. 제가 이번에 관련 사례들을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저도 그냥 '당뇨가 심해지면 발이 안 좋아진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핵심은 혈관에 있습니다. 혈당이 만성적으로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 혈관 벽이 딱딱해지고 내부가 좁아지면서 말초혈관질환으로 이어집니다. 말초혈관질환이란 심장에서 멀리 떨어진 팔다리의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심장에서 가장 먼 발끝부터 혈액 공급이 끊기는 건 그래서 자연스러운 순서입니다.
종아리에는 세 갈래의 동맥이 지나갑니다. 전경골동맥은 발등과 엄지발가락 쪽으로, 후경골동맥은 발바닥 쪽으로, 비골동맥은 발뒤꿈치와 발 바깥쪽으로 혈류를 공급하는 혈관입니다. 이 중 하나라도 막히면 해당 부위는 산소와 영양 공급이 차단되고, 결국 조직 괴사로 이어집니다.
더 무서운 건 신경 손상이 동시에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당뇨성 신경병증이라고 부르는 이 합병증은 통증, 온도, 감각을 담당하는 신경을 망가뜨립니다. 쉽게 말해 발에 상처가 생겨도 아프지 않은 상태가 됩니다. 실제로 제가 접한 사례에서 환자는 발가락과 발등이 새까맣게 변할 때까지 통증을 거의 느끼지 못했습니다. 의료진이 "아프지 않다는 게 오히려 더 심각한 신호"라고 했던 말이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 전경골동맥: 발등·엄지발가락 쪽 혈류 담당
- 후경골동맥: 발바닥 쪽 혈류 담당
- 비골동맥: 발뒤꿈치·발 바깥쪽 혈류 담당
- 세 혈관 중 하나라도 막히면 해당 부위 괴사 위험
발 괴사는 갑자기 오지 않는다
'며칠 지나면 낫겠지'라는 생각이 가장 위험합니다. 저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작은 상처 하나가 그렇게 빠르게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게 처음에는 잘 와닿지 않았거든요.
30년 가까이 당뇨를 앓으면서 혈당을 꼬박꼬박 관리해 온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욕실 배수구 덮개에 발을 긁혔을 때, 처음엔 평범한 상처처럼 보였습니다. 집에서 소독하고 연고를 발랐습니다. 그런데 2주가 넘어가도 상처는 아물기는커녕 오히려 커졌습니다. 검사 결과, 발등 쪽으로 가는 전경골동맥이 길게 막혀 있었고, 엄지발가락은 이미 괴사가 시작된 상태였습니다. MRI를 찍어보니 뼈까지 염증이 녹아들어 있었습니다.
당화혈색소(HbA1c)가 정상 범위인 5.9였음에도 이런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당화혈색소란 최근 3개월간의 평균 혈당 수준을 나타내는 수치로, 5.6 이하를 정상으로 봅니다. 혈당은 잘 잡혀 있었지만, 이미 손상된 혈관과 신경은 되돌아오지 않았던 겁니다. 한 번 타격을 받은 혈관과 신경은 혈당이 좋아져도 회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가장 묵직하게 느껴졌습니다.
당뇨병 환자 중 약 20%, 즉 다섯 명 중 한 명이 당뇨발을 경험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대한당뇨병학회).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당뇨에 노출되는 절대적인 시간이 늘어난 것도 당뇨발 환자가 증가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더 이상 혈당 관리만으로 안심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절단 예방, 지금 당장 바꿔야 할 습관
제가 이 사례들을 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은, 결과를 개인의 부주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한쪽에는 당뇨인지도 모른 채 수년을 보낸 환자가 있었고, 다른 쪽에는 수십 년을 성실하게 관리해 온 환자가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발을 잃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한 가지입니다. 발을 꾸준히 관찰했느냐는 것입니다. 당뇨발의 조기 발견을 위해 의료 현장에서 권고하는 발 관리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매일 발을 육안으로 살피고, 피부색 변화나 작은 상처, 감각 이상을 즉시 확인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특히 발가락 사이처럼 잘 보이지 않는 부위를 거울을 활용해 확인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혈관 손상이 심한 경우에는 혈관 조영술을 통해 막힌 부위를 확인하고 재개통을 시도하지만, 이미 무릎까지 괴사가 진행된 상태에서는 대절단이 불가피해집니다. 대절단이란 무릎 위 부위에서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말하며, 발목 아래의 소절단과 달리 재활과 일상 복귀에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수술 후 환자가 남은 다리에 힘을 주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이 상황을 막을 기회가 분명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국내 만성 콩팥병으로 혈액 투석을 받는 환자의 약 50%가 당뇨병 환자라는 사실도 당뇨가 단순히 혈당의 문제가 아닌 전신 혈관 질환임을 보여줍니다(출처: 대한신장학회). 혈당 수치뿐 아니라 발의 혈액순환, 피부 감각, 상처 회복 속도까지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것이 제가 이번에 얻은 가장 큰 교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당뇨 진단을 받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당뇨발도 걱정해야 하나요?
A. 네, 진단 초기부터 신경 쓰는 것이 맞습니다. 혈관과 신경의 손상은 당뇨 진단과 동시에 조금씩 시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세혈관 합병증은 평균적으로 10년 전후로 발현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그것이 '10년간 괜찮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진단 초기부터 발 관찰 습관을 들이는 것이 가장 확실한 예방책입니다.
Q. 당화혈색소가 정상인데도 당뇨발이 생길 수 있나요?
A. 그렇습니다. 혈당이 현재 잘 조절되고 있어도, 과거에 이미 손상된 혈관과 신경은 회복되지 않습니다. 당화혈색소 수치가 좋다는 건 현재 혈당 상태가 양호하다는 뜻이지, 혈관과 신경이 원상회복됐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래서 혈당 관리와 별개로 발 상태를 꾸준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발에 상처가 났을 때 집에서 소독만 해도 되나요?
A. 당뇨 환자라면 집에서의 자가 처치는 단기 임시 조치로만 생각하셔야 합니다. 상처가 일주일 이상 눈에 띄게 호전되지 않거나, 오히려 범위가 넓어진다면 즉시 병원을 방문해야 합니다. 당뇨 환자는 혈액순환이 저하돼 있어 일반인과 같은 속도로 상처가 아물지 않습니다. '며칠 더 지켜보자'는 판단이 가장 위험합니다.
Q. 당뇨발인지 어떻게 의심해볼 수 있나요?
A. 발이 차갑게 느껴지거나, 피부색이 붉거나 검게 변하거나, 상처가 생겼는데 아프지 않다면 당뇨발을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특히 통증이 없다는 것 자체가 신경 손상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발등이나 발가락에 색 변화가 보인다면 지체하지 말고 혈관외과나 당뇨 전문 클리닉에서 확인받으시길 권합니다.
결론
당뇨병을 오래 앓아온 환자들이 절단이라는 결과를 맞이하는 장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내용은 이미 당뇨가 있는 분들보다 아직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더 한 번씩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당뇨는 '혈당을 잘 조절하면 끝'이 아니라, 진단을 받은 순간부터 전신 혈관을 살피기 시작해야 하는 질환입니다.
당장 오늘부터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합니다. 발을 씻고 나서 30초만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피부색이 이상하진 않은지, 작은 상처가 생기진 않았는지, 감각이 전보다 무뎌진 것 같지는 않은지. 그 30초가 절단을 막는 첫 번째 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당뇨 진단을 받으셨다면, 다음 진료 때 발 상태도 함께 확인해달라고 요청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