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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를 얻기 위해 사람을 이용하는 것과, 사람이기 때문에 이용하지 못하는 것. 이 두 문장 사이에서 영화 <휴민트>는 두 시간 내내 줄타기를 합니다. 류승완 감독의 2년 만의 신작을 극장에서 직접 보고 왔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액션 영화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다가 전혀 다른 질문을 들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박정민이 연기한 박건, 영화의 진짜 중심
처음에는 조인성이 연기한 조 과장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 국정원 블랙요원(Black Operator)입니다. 여기서 블랙요원이란 공식적으로 신원이 노출되지 않은 채 해외에서 비공개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을 의미합니다. 조 과장은 동남아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동하며 인신매매 루트를 추적하는 작전을 홀로 이끌어 갑니다. 그 존재감이 워낙 강해서, 영화 초반에는 다른 인물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박정민이 연기한 박건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박건이야말로 이 영화의 균열을 만드는 인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는 북한 국가보위성 요원입니다. 국가보위성(State Security Department)은 북한의 정보·사찰 기관으로, 주민 감시와 반체제 인물 색출을 담당하는 조직입니다. 박건은 그 조직 안에서도 원칙주의자로 통하는 냉정한 인물입니다. 감시받을 행동을 해야 감시를 하냐는 식의 논리를 서슴없이 꺼내는 사람이죠.
그런 박건이 채선화를 마주하는 순간, 눈빛이 흔들립니다. 제가 그 장면을 보면서 정말 인상적이었던 건, 흔들리는 게 아주 잠깐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대사도 없고, 설명도 없습니다. 그냥 눈빛 하나로 이 인물이 얼마나 복잡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조직 안에서는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냉혈한처럼 보이지만, 채선화라는 변수 앞에서는 자신의 방식대로 선택하는 인물. YTN 역시 박건을 이렇게 평가했는데(출처: YTN), 저는 오히려 이 때문에 박건이 영화의 핵심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국가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처럼 보이다가, 마지막에는 자신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선택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 조 과장: 국정원 블랙요원, 비인가 작전으로 블라디보스토크 잠입
- 박건: 국가보위성 원칙주의 요원, 채선화를 둘러싼 감시와 감시 사이에 위치
- 채선화: 조 과장의 휴민트이자 박건의 약혼자, 두 남자를 연결하는 중심축
- 황치성: 무한 진술서라는 심리전을 구사하는 북한 총영사 측 인물
HUMINT, 정보원이 아닌 '사람'으로 읽히는 순간
영화의 제목인 HUMINT(휴민트)는 Human Intelligence의 약자입니다. 여기서 HUMINT란 기계나 신호 장비가 아닌, 사람을 통해 직접 수집하는 인적 정보를 의미합니다. 첩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불안정한 정보 수집 방식이기도 합니다. 불안정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정보원도 결국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조 과장에게 채선화는 휴민트, 즉 정보원입니다. 그는 그녀의 생일을 챙기고, 접선 루틴을 만들고, 신뢰를 쌓습니다. 얼핏 보면 인간적인 관계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정보 수집을 위한 관계 관리입니다. 이 냉정한 구조가 영화 전반부에 아주 명확하게 깔립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조 과장 역시 채선화를 단순한 정보원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첩보전의 규칙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감시하는 자가 감시당하고, 이용하는 자가 흔들리고, 냉정해야 하는 자가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류승완 감독은 <베를린>과 <모가디슈>에서도 국가와 개인의 충돌을 다뤄왔습니다. <휴민트>는 그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이번에는 국가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선택'에 더 집중합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KOBIS). 로케이션 촬영으로 완성된 블라디보스토크의 차갑고 클래식한 비주얼은 이 긴장감을 더욱 또렷하게 만들어 줍니다.
제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질문은 두 가지였습니다. 국가를 위해 사람을 희생할 수 있는가. 그리고 반대로,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국가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가. 영화는 이 질문에 단순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 과장과 박건의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는 분명해집니다. 국가와 조직은 사람을 숫자나 정보원으로 볼 수 있지만, 당사자에게는 자신의 삶이 전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이 마지막에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정보를 얻기 위해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결국 모든 선택의 중심에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것처럼 읽힙니다. 이 순간이 <휴민트>가 단순한 첩보 액션 영화와 달라지는 지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휴민트 베를린이랑 세계관이 연결되나요?
A. 네, <베를린> 세계관과 공유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베를린>을 먼저 보고 가면 특정 장면에서 연결고리를 찾는 재미가 있습니다. 다만 <베를린>을 보지 않아도 <휴민트> 자체만으로 충분히 이해가 되기 때문에, 사전 관람이 필수는 아닙니다.
Q. 휴민트 액션 많은 편인가요, 드라마 위주인가요?
A. 총격전, 격투, 차량 추격 등 강도 높은 액션이 분명히 있습니다. 특히 후반부에 액션 밀도가 확 올라갑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액션보다 인물들의 선택이 더 긴장감을 만든다는 점이었습니다. 둘 다 있지만, 인물 서사가 좀 더 오래 남는 영화입니다.
Q. HUMINT가 무슨 뜻인가요?
A. HUMINT는 Human Intelligence의 약자로, 기계나 신호가 아닌 사람을 통해 직접 수집하는 인적 정보를 뜻하는 첩보 용어입니다. 영화에서는 이 단어가 단순한 정보 수집 방법론을 넘어, 결국 모든 선택의 중심에 놓인 '사람' 자체를 의미하는 방향으로 읽힙니다.
Q. 신세경이 연기한 채선화 비중이 어느 정도예요?
A. 분량 자체는 조인성, 박정민보다 적을 수 있지만, 서사 구조상 채선화는 두 남자를 연결하는 중심축입니다. 조 과장에게는 휴민트(정보원)이고, 박건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 한 명을 두고 전혀 다른 두 가지 관계가 충돌하는 구조가 영화의 핵심이기 때문에, 비중 이상의 무게감이 있는 역할입니다.
결론
<휴민트>는 첩보 액션 장르의 외형 안에 꽤 묵직한 질문을 숨겨 놓은 영화입니다. 총격전이나 추격 장면보다, 왜 저 인물이 저런 선택을 했을까를 생각하면서 보는 것이 훨씬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제가 극장을 나오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박건이라는 인물이었는데, 냉정한 원칙주의자가 단 한 사람 앞에서 흔들리는 그 대비가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류승완 감독의 전작 <베를린>, <모가디슈>를 좋아했다면 분명히 만족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차가운 공기까지 느껴지는 미장센, 조인성·박정민·박해준·신세경이 쌓아가는 앙상블, 그리고 HUMINT라는 단어를 마지막에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서사. 이 세 가지만으로도 극장에서 볼 이유는 충분합니다. 2025년 상반기 첩보 액션 중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될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