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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연상호 감독의 신작 《얼굴》을 보고 나서 그 확신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40년 동안 실종된 어머니, 얼굴도 모른 채 치르는 장례식, 그리고 "못생겼다"는 한 마디로 기억되는 한 여성의 이야기.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제목 '얼굴'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1인 2역이 만들어낸 감정의 구조
일반적으로 1인 2역이라고 하면 쌍둥이나 변장 같은 설정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얼굴》에서 박정민이 맡은 두 역할은 그런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1인 2역이란, 아들 임동환이 아버지 이명규의 젊은 시절을 동시에 연기하는 구조입니다. 쉽게 말해 아들이 아버지의 과거를 추적하면서, 스크린 위에서는 그 아버지를 직접 연기하는 배우와 마주치는 셈입니다.
제가 극장에서 이 장면들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순히 한 배우가 두 캐릭터를 번갈아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두 역할이 서로의 감정에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정민 본인도 제작보고회에서 두 역할이 서로에게 기묘한 감정을 남긴다고 밝혔는데, 실제로 영화를 보면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박정민 특유의 연기 스타일, 즉 답답함과 짜증이 뒤섞인 감정 표현은 이번에도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순히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해가는 아들의 감정 변화가 그 안에 쌓여 있었습니다. 같은 배우가 같은 얼굴로 두 사람을 연기하는데, 그 얼굴이 전혀 다르게 읽히는 경험을 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감각은 연출과 편집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절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영화적 장치로서의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 즉 이야기를 배열하고 정보를 드러내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는 특히 중요하게 작동합니다. 여기서 내러티브 구조란 어떤 정보를 언제 관객에게 보여줄 것인지를 결정하는 틀을 의미합니다. 《얼굴》은 이 구조를 이용해 관객이 먼저 감정적으로 연루된 뒤에야 사건의 전모를 조금씩 드러내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 아들 임동환(박정민)이 어머니의 과거를 추적하는 현재 서사
- 같은 배우 박정민이 연기하는 젊은 시절 아버지 이명규의 과거 서사
- 두 서사가 교차하며 관객에게 감정적 충돌을 유도하는 편집 방식
- 1인 2역이 단순한 기술적 도전이 아니라 주제 자체를 담아내는 구조임
정영희라는 얼굴 — 우리는 무엇을 본다고 착각하는가
영화에서 정영희는 처음부터 끝까지 "못생겼다"는 말로 묘사됩니다. 친언니마저 카메라 앞에서 그 말을 서슴없이 꺼냅니다. 일반적으로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좋은 말만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영화 속 이모들은 달랐습니다. 40년 만에 나타나 유산은 챙기려 하면서, 동생의 외모를 반복해서 비하하는 그 장면들이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 불편함이 감독이 의도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연상호 감독은 정영희의 얼굴을 관객이 하나의 이미지로 규정하지 못하도록 설계했다고 밝혔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정영희의 얼굴은,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됩니다. 착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못생겼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녀가 도망쳤다고 믿었고, 어떤 사람은 그녀가 희생됐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같은 사람인데 얼굴이 다 다릅니다.
신현빈 배우는 이 복잡한 역할을 목소리 하나, 호흡 하나로 구현해냈습니다. 제 경험상 외모에 대한 편견이 연기에 가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그 반대였습니다. 외모 대신 내면의 결을 연기로 드러내야 하는 역할에서, 신현빈은 이전 작품들에서 보지 못했던 무게감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면 안 될 거잖아요"라는 짧은 대사 한 줄이, 영이가 살아온 삶 전체를 담고 있었습니다.
영화 비평에서 자주 쓰이는 개념 중에 미장센(mise-en-scène)이 있습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우의 위치, 조명, 소품, 의상 등이 의미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얼굴》에서 정영희가 등장하는 장면들의 미장센은, 그녀를 결코 하나의 감정으로 고정시키지 않습니다. 이 점은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가 2024년 발표한 독립·예술영화 트렌드 보고서에서 언급한 "캐릭터의 다면성을 시각 언어로 구현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또한 영화 속 전각(篆刻), 즉 돌이나 금속에 글자나 문양을 새기는 전통 공예 기술이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전각이란 단순한 도장 제작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손끝으로 새겨 형태를 부여하는 행위입니다. 시각장애인 전각장인 이명규가 손으로 세상을 보고 느낀다는 설정은, 영화 전체의 주제인 "본다는 것의 본질"과 직접 연결됩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전각 분야 관련 기록에 따르면, 전각은 단순히 기술이 아닌 작가의 심상(心象)을 물질에 새기는 예술로 분류됩니다(출처: 문화재청).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오래 생각한 것은 결국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얼마나 쉽게 규정해왔는가. 얼굴을 보면 다 안다고 생각했던 그 자신감이, 어쩌면 가장 위험한 착각일 수 있다는 것.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얼굴》은 어떤 장르인가요? 공포나 스릴러인가요?
A. 미스터리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일반적으로 연상호 감독 하면 좀비나 재난 장르를 떠올리기 쉽지만, 《얼굴》은 한 가족에게 묻혀 있던 40년 전 비밀을 추적하는 이야기입니다. 공포보다는 감정적 충격이 훨씬 강한 영화입니다.
Q. 박정민이 1인 2역을 한다는데, 헷갈리지 않나요?
A. 제가 직접 보니 헷갈리기보다는 오히려 몰입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했습니다. 아들과 젊은 아버지가 같은 얼굴이라는 설정이 영화의 주제와 맞물려 있어서,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다만 초반 20분은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Q. 신현빈 배우가 어머니 정영희 역을 맡았는데, 분량이 많은가요?
A. 분량 자체보다 밀도가 훨씬 높은 역할입니다. 짧은 장면에서 정영희가 살아온 삶 전체를 담아내야 하는 연기인데, 신현빈은 대사 한 줄과 표정 하나로 그것을 해냅니다. 이전 작품들과 비교해도 확실히 다른 결의 연기였습니다.
Q. 결말이 열린 결말인가요? 범인이 밝혀지나요?
A. 스포일러 없이 말씀드리면, 이 영화는 범인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사건의 전모보다 관객 스스로가 어떤 감정으로 그 결말을 받아들이느냐가 핵심입니다. 열린 결말이라고 볼 수 있지만, 불만족스러운 열림이 아니라 생각을 계속하게 만드는 열림입니다.
결론
《얼굴》은 제가 최근에 본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저예산 독립영화에서도 연기력과 연출이 맞물리면 이런 몰입감과 밀도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이전 장르 영화들을 기대하고 갔다면 조금 낯설 수 있지만, 그 낯섦이 오히려 이 영화의 힘입니다.
본다는 것이 곧 이해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얼굴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보다 선명하게 아름다움을 새기고, 얼굴을 본 사람들이 오히려 한 사람을 가장 틀리게 기억하는 이 영화의 아이러니는, 극장 문을 나선 뒤에도 계속 작동합니다. 9월 11일 개봉한 《얼굴》, 극장에서 직접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