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내부자들〉을 처음 볼 때 "그냥 범죄 스릴러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악당이 누구인지 딱 집어서 말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정치인, 재벌, 언론, 검찰, 정치깡패가 한 덩어리로 얽혀 돌아가는 이 영화는, 제가 본 한국 영화 중에서 권력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가장 냉정하게 그린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권력구조 — 이 영화에서 진짜 무서운 건 '시스템'이었습니다처음에 저는 안상구(이병헌)가 이 영화의 중심이라고 봤습니다. 손목이 잘리고, 조직에서 버려지고, 복수를 다짐하는 인물이니까요.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안상구는 칼이고, 그 칼이 어디로 향할지를 정하는 건 따로 있다는 걸요.〈내부자들〉에서 가장 무서운 ..
2016년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영화 〈밀정〉은 실제 역사 사건인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작품입니다. 처음 봤을 때 저는 그냥 첩보 액션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머릿속에 남은 건 폭발 장면이 아니라 "이정출은 도대체 어느 편이었던 걸까?"라는 질문 하나였습니다.이정출이라는 인물,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렸습니다〈밀정〉에서 이정출은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입니다. 직책은 경부(警部). 여기서 경부란 지금으로 치면 경찰 간부급 직책으로, 당시 조선인이 오르기 매우 힘든 자리였습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그가 얼마나 복잡한 위치에 있는 인물인지가 느껴졌습니다.영화 초반에 이정출은 의열단을 잡기 위한 수사를 하면서도, 의열단 리더 김우진과 가까워집니다. 상하이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그냥 복수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15년을 갇혀 있다가 나온 남자가 범인을 추적한다는 설정만 보면 그렇게 읽힐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마지막 장면까지 다 보고 난 뒤 저는 한동안 화면만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2003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가 올해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이 영화가 계속 회자되는 이유, 지금부터 제가 직접 뜯어보겠습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죄의식이라는 뼈대 — 이 영화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닌 이유를 처음 보면 대부분 오대수의 시점에 완전히 끌려갑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왜 감금됐는지 모르는 채로 15년을 버티고, 풀려난 뒤에는 자신을 가둔 사람을 찾아 나서는 과정이 워낙 강렬하다 ..
처음 봤을 때와 두 번째 봤을 때 완전히 다른 영화처럼 느껴진 작품이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그랬습니다. 처음엔 웃기고 스릴 넘치는 이야기였는데, 다 보고 집에 오는 길에 뭔가 씁쓸한 게 계속 남아서 다음 날 한 번 더 봤습니다. 두 번째로 봤을 때 저는 첫 장면부터 전혀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위에서 아래로, 영화가 설계한 계층 구조영화를 처음 볼 때는 기택 가족이 박 사장 집에 하나씩 들어가는 과정이 그냥 통쾌하게 느껴졌습니다. 기우가 학력을 위조해 과외 선생님 자리를 얻고, 기정이 미술 치료사로, 기택이 운전기사로, 충숙이 가사도우미로 들어가는 일련의 흐름이 마치 영리한 사기극처럼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보니 봉준호 감독이 그 재미 뒤에 아주 치밀하게 무언가를 숨겨..
솔직히 저는 《타짜》를 처음 봤을 때 그냥 도박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 며칠 동안 고니와 아귀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1편부터 3편까지 다시 돌려보고 나서야 이 시리즈가 단순히 화투판을 배경으로 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욕망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아주 집요하게 파고드는 영화였습니다.타짜 시리즈가 만들어진 배경과 세계관《타짜》 시리즈는 허영만 작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합니다. 원작 만화는 1990년대 한국 도박 문화의 이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당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제가 원작 만화를 나중에 찾아봤을 때, 영화가 얼마나 충실하게 그 분위기를 살렸는지 새삼 놀랐습니다.1편(2006)은 화투를 중심으로 고니라는 청년이 타짜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이야기입..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셔터 아일랜드는 단순한 반전 스릴러가 아니었습니다. 주인공이 쫓고 있던 진실이 사실은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처음 봤던 장면들이 전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 마지막 대사 하나가 머릿속에서 며칠째 떠나질 않았습니다.섬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뭔가 이상하다처음 영화를 볼 때는 솔직히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1954년, 연방보안관 테디 다니엘스가 새 파트너 척과 함께 셔터 아일랜드의 에쉬클리프 정신병원으로 향하는 장면부터 그냥 전형적인 범죄 스릴러처럼 느껴졌거든요.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고립된 섬, 중범죄자 수용 정신병원이라는 설정이 긴장감을 잘 살려줬습니다.그런데 직접 봐보니, 영화 초반부터 심어놓은 단서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메가로돈이 세 마리, 여기에 심해 생물과 거대 문어까지. 《메가로돈 2: 더 트렌치》는 전편보다 스케일을 세 배쯤 키워버린 영화입니다. 솔직히 처음 이 설정을 들었을 때 "이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그 판단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더군요.심해생물이 쏟아진다 — 기체층 아래의 세계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설정은 열수공(Hydrothermal Vent) 주변의 기체층 경계면입니다. 여기서 열수공이란 해저 지각의 틈새에서 뜨거운 유체가 솟아오르는 지형을 말하는데, 실제로 이런 환경 주변에는 햇빛이 전혀 닿지 않아도 생존하는 독자적인 생태계가 형성됩니다. 영화는 바로 이 개념을 가져와, 기체층 아래에 인류가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바다가 존재한다는 설정을 만들어냈습니다.마나원..
사랑이 살인의 동기가 될 수 있을까요. 직접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처음 든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나일 강의 죽음》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원작 소설을 케네스 브래너가 감독·주연으로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완벽하게 설계된 알리바이, 밀폐된 공간 위에서 벌어지는 살인, 그리고 사랑이 집착으로 변하는 순간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가 끝날 때쯤 묘한 잔상이 남습니다.이보다 완벽한 알리바이가 또 있을까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입을 벌린 장면이 있었습니다. 재클린이 사이먼에게 총을 쏘는 장면입니다. 처음엔 단순한 우발적 사고처럼 보였거든요. 재클린은 충격에 빠지고, 사이먼은 다리에 총을 맞아 꼼짝도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그러니까 사이먼은 리넷을 죽일 수 없다, 그게 당연한 결론처럼 느껴졌습니다.그런데 알고 보면..
1편과 2편을 꽤 재미있게 봤던 터라 3편 공개 소식에 바로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 든 첫 생각이 "좋았는데, 아쉽다"가 아니라 "아쉬운데, 좋은 부분도 있다"였습니다. 순서가 바뀐 것 같아도 그 차이는 꽤 큽니다. 에놀라 홈즈 3는 캐릭터 성장이라는 측면에서는 분명히 할 말이 있는 작품이지만, 시리즈의 마무리작으로서는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이 적지 않았습니다.캐릭터 성장: 에놀라는 분명히 자랐다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먼저 주목한 건 에놀라가 얼마나 달라졌느냐는 점이었습니다. 1편에서는 어머니를 찾아 런던을 헤매던 소녀였고, 2편에서는 자기 이름을 걸고 처음으로 의뢰를 받는 탐정으로 성장했죠. 그리고 3편에서 에놀라는 테우크스베리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이번 작품의 캐릭터 아크(..
개봉 첫 주에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 1억 3,700만 달러. 제작비 9천만 달러를 단 일주일 만에 넘어버린 영화입니다. 저도 처음 이 수치를 보고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다시 틀었는데 결국 169분을 한 번도 자리를 못 떴으니까요.액션 분석 — 이 영화는 어떻게 싸우나존 윅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칼 쓰는 거 아니야?" 예고편만 보면 그렇게 오해할 수 있는데, 실제로 검술 비중은 전체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 시리즈의 본질은 건 푸(Gun-Fu)입니다. 여기서 건 푸란 총기 사격과 무술 격투를 유기적으로 결합한 액션 스타일로, 총만 쏘거나 주먹만 쓰는 게 아니라 두 가지를 끊임없이 이어붙이는 방식입니다. 제가 1편을 처음 봤을 때 이 개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