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연상호 감독의 신작 《얼굴》을 보고 나서 그 확신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40년 동안 실종된 어머니, 얼굴도 모른 채 치르는 장례식, 그리고 "못생겼다"는 한 마디로 기억되는 한 여성의 이야기.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제목 '얼굴'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1인 2역이 만들어낸 감정의 구조일반적으로 1인 2역이라고 하면 쌍둥이나 변장 같은 설정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얼굴》에서 박정민이 맡은 두 역할은 그런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1인 2역이란, 아들 임동환이 아버지 이명규의 젊은 시절을 동시에 연기하는 구조입니다. 쉽게 말해 아들이 아버지의 과거를 추적하면서, 스크린 위에서는 그 아버지를 직접 연기하는 배우와 마주치는 ..
솔직히 말하면, 저는 처음에 이 영화 제목만 보고 멜로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남편들》이라니. 그런데 알고 보니 한 여자의 전남편과 현남편이 똑같이 손을 들고 "제가 황현주 학생 아버지입니다"라고 외치는 코미디 액션이었더라고요. 예고편을 보는 순간, 이건 그냥 그 느낌이다 싶었습니다. 《극한직업》 이후로 오랜만에 뇌를 완전히 비울 수 있는 한국 영화가 왔다는 느낌이요. 전남편과 현남편이 한 팀이 된다는 설정, 실제로 보면 어떨까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첫 번째 생각은 "설정 하나로 영화 절반은 먹고 들어갔다"는 거였습니다. 초등학교 웅변 대회에서 황현주 학생의 아버지가 두 명이 손을 드는 오프닝 장면부터, 이미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웃음을 뽑아낼지 다 보이거든요.진선규가 연기하는 황충식은 마..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를 몰랐습니다. 제가 웃고 있다는 사실을요. 사람이 죽어가는 장면인데 극장 안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고, 그 직후에 '지금 내가 뭘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는 바로 그 불편한 감정을 설계한 영화입니다. 단순한 범죄극이 아니라, 일자리와 가족과 생존 본능이 뒤엉킨 이야기입니다.분재 상징: 감독이 숨겨놓은 디테일들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화면 속 나무였습니다. 주인공 유만수는 제지업에 종사하는 인물입니다. 나무를 베어 돈을 버는 사람이죠. 그런데 그의 취미는 온실에서 나무를 정성스럽게 기르는 것입니다. 처음엔 그냥 개인 취향처럼 보였는데, 나중에 보니 감독이 의도적으로 설계한 이중성이었습니다.이 장치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
'오늘 넷플릭스에서 뭐 보지?' 하다가 시간 때우려고 틀었는데 어느 순간 손에 땀이 맺혀 있는 경험,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2026년 4월 24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이 딱 그런 영화였습니다. 샤를리즈 테론 주연에 95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호주 오지를 배경으로 한 생존 스릴러입니다. 기대를 크게 안 하고 틀었는데, 예상보다 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습니다.자연의 위협 — 살인마보다 무서운 것이 있었다일반적으로 스릴러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빌런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을 보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 영화에서 진짜 위협은 태런 에저튼이 연기한 살인마 벤만이 아니었습니다.호주 오지(outback)라는 배경 자체..
정보를 얻기 위해 사람을 이용하는 것과, 사람이기 때문에 이용하지 못하는 것. 이 두 문장 사이에서 영화 는 두 시간 내내 줄타기를 합니다. 류승완 감독의 2년 만의 신작을 극장에서 직접 보고 왔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액션 영화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다가 전혀 다른 질문을 들고 나왔기 때문입니다.박정민이 연기한 박건, 영화의 진짜 중심처음에는 조인성이 연기한 조 과장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 국정원 블랙요원(Black Operator)입니다. 여기서 블랙요원이란 공식적으로 신원이 노출되지 않은 채 해외에서 비공개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을 의미합니다. 조 과장은 동남아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동하며 인신매매 루트를 추적하는 작전을 홀로 이끌어 갑니다. 그 존재감이 워..
권력을 빼앗긴 왕보다 그 왕을 곁에서 지켜본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가 더 오래 남을 수 있을까요. 영화 을 보고 나서 그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왕의 비극이 아니라 한 인간의 온기를 먼저 보여준 영화였기 때문입니다.계유정난, 그 권력의 문법숙부가 조카의 왕위를 빼앗는 게 정당한 일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영화를 보면서 이 질문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1452년, 이홍위는 열두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릅니다. 그러나 불과 이듬해인 1453년, 숙부 수양대군이 무력으로 조정을 장악하는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계유정난이란 수양대군이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실권을 장악한 쿠데타로, 이후 단종의 폐위와 유배로 이어진 역사적 사건을 가리킵니다. 단종은 결국 왕위에서 물러나 노산군(魯山君..
악귀를 물리치는 아이돌 이야기라고 하면 솔직히 처음엔 좀 황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공개 직후 미국, 프랑스를 포함한 41개국에서 글로벌 영화 부문 1위를 기록했고, 영화 속 아이돌 그룹 뮤직비디오 조회수도 1,000만 회를 돌파했습니다. 단순히 한국 문화를 소재로 쓴 작품이 아니라, 전통을 꽤 깊이 파고든 작품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한국 전통 문화가 이렇게 정교하게 들어간 애니가 있었나'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한국 문화가 녹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뭐, 그냥 한복이나 김치 정도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 제가 직접 보고 나서는 그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